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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3계곡

3377 2012. 7. 25. 19:34

숲그늘·골바람에 오싹… 머리가 씻기고 마음이 흐른다

입장료·자릿세·음식점 없는 평창 ‘3無 계곡’ 문화일보 | 박경일기자 | 입력 2012.07.25 14:31

# 삼단폭포 아래 최고의 피서명소… 막동계곡

삼단폭포가 그려내는 화려한 물줄기가 아니라면 막동계곡은 더 오래도록 꼭꼭 숨겨져 있었으리라. 오대산에서 발원해 흘러내리는 오대천의 물굽이를 따라가는 59번 국도. 영동고속도로 진부쪽에서 정선 쪽으로 이어지는 그 길을 차로 달리다 보면 백석산 자락의 협곡을 타고 내려와 오대천과 합류하는 폭포가 대번에 눈길을 붙잡는다. 이른바 삼단폭포다. 그 폭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막동계곡이다.

↑ 평창이라면 대번에 이효석과 메밀꽃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데, 이즈음에는 메밀꽃은 아직 이르고, 대신 무밭에 흰 꽃들이 ‘소금을 뿌린 듯’ 피어 있다.

↑ 강원 평창의 팔석정의 풍경. 조선시대 강릉부사였던 양사언이 정자를 짓고 8개의 바위마다 이름을 지어 붙였다는 명소다. ‘낚시던지기 좋은 바위’, ‘낮잠자기 좋은 바위’ 등 붙여진 이름이 재미있다. 지금도 바위를 뒤져보면 다섯 개의 글귀를 찾을 수 있다. 관광지로 지정되지 않아 호젓하게 풍류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강원 평창군 진부면 막동리. 당당하게 리(里)의 행정구역을 차지하고 있지만 가구 수래야 서른 집 남짓. 그것도 오대천 이쪽저쪽에 띄엄띄엄 들어선 독가촌들이 대부분인데다 빈집을 빼고 나면 주민 숫자는 스무 명쯤이 고작이다. 3㎞ 남짓 이어지는 계곡은 깊고, 깊은 산중을 흘러내리는 물은 맑고 차갑다. 숲 그늘은 또 얼마나 짙은가. '청류(淸流)'란 이름은 바로 이런 계곡의 물에 붙여져야 마땅하리라.

막동계곡에서 가장 명당이라면 삼단폭포 아래다. 폭포가 뿜어내는 바람과 물안개로 폭포 아래는 서늘하다. 그 폭포 한쪽에 마을 주민들이 파라솔을 편 테이블 두 개를 가져다 놓았는데, 여기에다 짐을 풀 수만 있다면 여름휴가를 보내는 '최고의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자릿세는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된다. 그저 얌전히 놀다가 쓰레기만 남기지 않는다면 주민들은 환영이다. 마을 주민들이 자그마한 야영장 입구에서 500원짜리 쓰레기봉투 두 장씩을 팔고 있지만, 내가 내놓은 쓰레기만 가져간다면야 그거야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이다. 봉투를 파는 게 돈을 남기는 장사가 아닌 까닭이다.

폭포 위쪽에는 자그마한 캠핑장이 있다. 사유지라 텐트를 치면 자릿세를 받고 있지만, 비좁긴 해도 계곡을 따라 텐트를 칠 자리가 군데군데 있다. 통행에 불편만 주지 않는다면 여기에 텐트를 쳐도 돈을 받지 않는다. 계곡에 딸린 화장실이나 샤워실도 따로 돈을 받지 않는다. 피서객들이 찾아오면서 불편함이 왜 없을까만 주민들은 외지인들을 환대한다. 막동리 이장은 "그게 막동리의 인심"이라고 설명했다.

폭포에서 계곡을 따라 올라가도 놀 자리는 있다. 하지만 문제는 계곡으로의 접근이다. 계곡은 길고 깊지만, 물길의 오른편을 따라가는 계곡 길은 가파른 경사를 차고 오른다. 이 길을 따라 1㎞ 남짓만 올라가면 물길은 까마득한 벼랑 아래에 있다. 아슬아슬한 벼랑 아래로 짙은 숲 속의 물길이 굽어 보인다. 이쯤이면 계곡이라기보다는 협곡이라 해야 옳을 듯하다. 계곡과 길의 형세가 이러니 상류쪽에서 물놀이를 즐기겠다면, 물길을 따라 바위를 딛고 거슬러 올라야 한다. 하지만 계곡이 워낙 깊은데다 물살도 힘차서 웬만한 체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펜션 두어 곳을 지나 이끼 낀 물속의 바위를 딛고 더 오른다면 아무도 손댄 적 없는 그야말로 원시림의 계곡이 선물처럼 나타난다. 거기서 계곡 곳곳의 맑은 소(沼)에서 헤엄을 쳐도 좋고, 굽이치는 계류에 발을 담가도 좋고, 아니면 서늘한 계곡의 기운을 느끼며 숲 그늘 아래 낮잠을 자도 좋다. 이미 막동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최고의 휴가'가 거기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바닥이 훤히 비치는 맑은 소… 장전계곡

막동계곡이 오지로 남아있던 것은 어찌 보면 장전계곡 때문이기도 하다. 막동계곡과 장전계곡의 거리는 불과 300m 정도. 하지만 오대천과 만나는 하류가 그렇다는 것이지 계곡을 따라 오르면 계곡의 물길 방향은 전혀 다르다. 막동계곡은 백석산에서 발원하고, 장전계곡은 가리왕산에서 흘러내린다. 계곡의 규모면으로 보자면 막동계곡보다 장전계곡이 더 크다. 그러니 막동계곡이 뒷전으로 밀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장전계곡은 몇 해 전만 해도 상류쪽의 이끼로 뒤덮인 이른바 '이끼계곡'이 명소로 꼽혔었다. 온통 이끼로 뒤덮인 청량한 계곡은 사진가들을 비롯해 피서객들을 불러모았다. 그러나 잇단 수해와 사람들의 발길에 이끼계곡이 훼손되자 사람들의 출입이 뜸해졌다. 3~4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휴가 때면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뤘지만, 지금은 휴가철에도 피서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마을 한쪽에 번듯한 캠핑장도 마련해 두었지만, 지금은 요금을 받는 이조차 없다. 마을 안쪽에서 성업을 이루던 민박집들마저 썰렁하다.

마을 주민들은 휴가철 외지사람들이 몰려들 때를 한 때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한 주민은 "3년 전쯤에는 피서철에 이 계곡에 300대가 넘는 차가 밀려들었다"며 "계곡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데 왜 피서객들이 줄어들었는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아마도 이것저것 편리한 시설들이 있는 피서지가 많이 늘어서 일 것"이라고 스스로 답했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들이 편리한 시설의 휴가지를 좋아한다고 해도, 이런 청정하고 서늘한 계곡에 피서객들이 몰리지 않는다는 것은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장전계곡에 들어서면 눈이 먼저 호사한다. 어찌나 계곡물이 맑은지 고인 소마다 초록빛으로 푸른 빛으로 투명하게 빛난다. 장마 때 그득 물을 품은 계곡의 물살은 제법 힘차다. 계곡가의 짙은 숲 아래서는 물이 뿜어내는 찬 기운만으로 서늘하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자 찬 기운에 금세 발가락이 오그라든다. 웬만큼의 더위로는 몸을 담글 엄두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다. 굳이 상류로 올라갈 것도 없이 하류쪽에도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소들이 그득하다. 곳곳에 반석이 있어 물놀이를 하기에 더없이 좋다.

계곡 입구에서 3㎞쯤 가면 왼쪽 대궐터 계곡과 오른쪽 암자동 길로 나뉜다. 대궐터란 이름은 옛날 맥국의 가리왕이 예국의 공격을 피해 그곳에 대궐을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 이끼계곡이 그 자락에 있다. 피서를 하겠다면 대궐터쪽보다는 오른편 암자동 계곡쪽이 더 낫다. 계곡의 규모는 작지만 제법 번듯한 캠핑장도 갖추고 있는데다 군데군데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그만그만한 소들이 깔려있다. 온 가족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수박 한쪽 깨먹기에 딱 좋다.

# 풍류넘치는 물가서 보물찾듯 글귀를 찾다… 팔석정

막동계곡과 장전계곡이 짙은 숲을 품은 자연미 넘치는 계곡이라면, 평창의 팔석정은 그윽한 옛사람들의 풍류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이다. 팔석정은 봉평면 평촌리의 앞들을 흘러내리는 흥정천에 자리 잡은 명승지다. 논을 따라 이어지는 평범한 물길이 솔숲 울창한 바위를 만나 굽어 치는 곳인데, 여덟 개의 큰 바위가 있다고 해서 '팔석정(八石亭)'이란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그렇다고 바위가 여덟 개만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물길이 굽어 치는 곳에 뒹구는 기암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팔석이란 이름은 조선조에 강릉부사를 지낸 양사언이 지어붙인 것이다. 양사언은 정작 정사보다는 풍류를 더 즐겼던지 전국 곳곳의 이름난 명소마다 글귀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양사언은 영동, 영서지방을 돌며 풍치 좋은 곳에 머물며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 강릉부사였던 그가 이곳 평창의 팔석정을 찾은 것은 이곳이 조선시대에 강릉 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곳 팔석정의 경관에 매료돼 8일 동안 머물며 '8일정'이란 정자를 세워두고, 1년에 3번 봄, 여름, 가을에 이곳을 찾아왔다고 전한다. 그러다가 임기를 마치고 강원 고성으로 전근을 가게 되자 그는 이곳 바위마다 각각의 이름을 붙여주고 이를 새겨넣도록 했다. 봉래, 방장, 영주 등 금강산과 지리산, 제주도의 옛 이름을 딴 것도 있고, 낚시던지기 좋은 바위(석대투간·石臺投竿), 낮잠자기 좋은 바위(석실한수·石室閑睡) 등도 있다. 이름이야 여러가지지만 이래저래 놀기 좋다는 뜻이겠다.

학문과 시서를 논하고 취흥에 젖었던 곳인지 그 풍류야 말해 무엇할까. 정자는 자취도 없고, 도로가 나고, 바위가 흘러내려 계곡이 좁아지면서 예전의 풍류를 잃었다고 했지만, 물길을 앞 뒤 풍경을 딱 잘라버리고, 이곳 팔석정의 풍경만 본다면 이만한 자리가 없겠다 싶다. 여기서 물놀이를 하면서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양사언이 썼다는 바위의 글씨를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바위에 새긴 여덟 개의 글씨 중에서 '방장'과 '석구도기'는 홍수 때 유실됐고, '석평위기'가 새겨진 바위는 거꾸로 엎어져 있어 찾을 수 없지만, 나머지 다섯 개의 글귀는 아직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팔석정을 건너는 다리 너머로 최근 평창군에서 조성한 효석문학 100리길의 제1구간이 지난다. 전체 100리 길의 도보코스 중에서 팔석정 건너편의 이쪽 제1구간이 가장 빼어나다니 따로 시간을 내서 걸어봄 직하다. 물길에 딱 붙어 이어지는 하늘을 가린 어둑한 숲길은 금세 끝이 나지만, 물소리와 청량한 솔숲의 걷는 맛이 각별하다.